BOB VYLAN

그라임 펑크 아티스트

그라임 펑크 아티스트 Bob Vylan은
어딘가에 소속감을 느낀 적이 없었습니다.
영국에서 혼혈로 태어난 Bob은 때때로 여기는
자신이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고, 학교에서
몇 차례의 사건이 있은 후에는 퇴학 당해야 했습니다.

그의 지난 시간은 순탄치 않았지만,
쉽게 굴복하지는 않았습니다.
Bob은 스스로의 어린 시절을 아웃사이더라고 묘사하는
한편, 여기에서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고도 말합니다.

“난 어린 시절부터 꽤나 많은 것을 익혀야만 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내 삶의 끝까지 함께 해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금방 깨달았죠.”

“터프하다는 말은 스스로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Bob은 어떤 일에도 의미를 부여하진 않았지만, 예술적 창구로서 음악에는
본능적으로 끌렸습니다. 장르, 스타일, 레이블에 관계 없이,
심지어 그저 소음이더라도 개의치 않고 그에게 닿는 모든 소리에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한계가 지어진 것은 없습니다. 항상 내가 좋아했던 것은
낡은 카세트 테이프, 해킹된 라디오 소리와 같이 가공되지 않은 것이자
다른 것들과 타협하지 않는 자기주장이 강한 것들이었습니다.
마침내 내가 깨달았던 것은 우리 주변의 수많은 음악들이
이미 뚜렷한 색깔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이러한 소리를 기타로 연주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Bob은 음악을 공부하기 위해 중퇴에도 불구하고 대학에 도전했으며,
학사 학위, 그리고 석사 학위까지 수여 받았습니다.
이제 그가 할 일은 기타를 들고, 그저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당신이 나아갈 길은 언제나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잠시 쉬거나 우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러나 일단 눈물이
멈춘 뒤에는, 문제를 마주하고 정면으로 헤쳐 나가야 합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한순간에, Bob이 주변에 어울리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강점이 되었습니다. 어떤 정해진 이름표를 따르지 않는 것은
그가 어떤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도록 했습니다.
그는 눈에 띄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그의 창의력은 솟구치기 시작했습니다.
“그건 이미 허용된 것들에 메이지 않고
내가 원하는 음악을 만든다는 것을 말합니다.”

Bob은 다른 랩이나 레게 음악과의 혼합을 추구하는
그라임 운동과 펑크 장르 사이에서 어떤 가능성을 발견하고
활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여전히 아웃사이더였지만
그만의 원칙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다른 장르를 융합하는
중에도 정해진 규칙을 따르지 않았고, 타인으로부터 영향을
받더라도 100% 자기 자신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습니다.